성경의 장 및 절수


성경의 정확한 장, 절, 단어 수는 어떻게 되나요?

1. 권수 : 총 66권
     -  구약 39권
     -  신약 27권

2. 장수 : 총 1,189장
    - 구약 929장
    - 신약 260장

3. 절수 : 총 31,102절
    - 구약 23,145절
    - 신약   7,957절

4. 영어 킹제임스성경의 단어 수 :  788,258단어
    - 구약  609,247단어
    - 신약  179,011단어

*우리말의 경우에는 조사도 한 단어로 취급하기 때문에 영어와 같이 단어 수를 세는 것이 용이하지 않으며 아직 통계가 없습니다.
다음의 표에 제시된 성경의 장, 절, 단어는 영어 <킹제임스성경>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한글킹제임스성경> 역시 장, 절이 동일합니다.

<구약>

  성경     장      절        단어

창세기  50    1,533    38,262

출애굽기/40-1,213-32,685

레위기/27-859-24,541

민수기/36-1,288-32,896

신명기/34-959-28,352

여호수아/24-658-18,854

재판관기/21-618-18,966

룻기/4-85-2,574

사무엘상/31-810-25,048

사무엘하/24-695-20,600

열왕기상/22-816-24,513

열왕기하/25-719-23,517

역대기상/29-942-20,365

역대기하/36-822-26,069

에스라/10-280-7,440

느헤미야/13-406-10,480

에스더/10-167-5,633

욥기/42-1,070-18,098

시편/150-2,461-42,682

잠언/31-915-15,038

전도서/12-222-5,579

솔로몬의노래/8-117-2,658

이사야/66-1,292-37,036

예레미야/52-1,364-42,654

예레미야애가/5-154-3,411

에스겔/48-1,273-39,401

다니엘/12-357-11,602

호세아/14-197-5,174

요엘/3-73-2.033

아모스/9 146-4,216

오바댜/1-21-669

요나/4-48-1,320

미카/7-105-3,152

나훔/3-47-1,284

하박국/3-56-1,475

스파냐/3-53-1,616

학개/2-38-1,130

스카랴/14-211-6,443

말라키/4-55-1,781

구약 합계/929장-23,145절-609,247단어

<신약>

성경이름/장-절-단어

마태복음/28-1,071-23,343

마가복음/16-678-- 14,949

누가복음/24-1,151-25,640

요한복음/21-879-18,658

사도행전/28-1,007 24,229

로마서/16-433-9,422

고린도전서/16-437-9,462

고린도후서/13-257-6,046

갈라디아서/6-149-3,084

에베소서/6-155-3,022

빌립보서/4-104-2,183

골로새서/4-95-1,979

데살로니가전서/5-89-1,837

데살로니가후서/3-47-1,022

디모데전서/6-113-2,244

디모데후서/4-83-1,666

디도서/3-46-896

빌레몬서/1-25- 430

히브리서/13-303- 6,897

야고보서/5-108- 2,304

베드로전서/5-105- 2,476

베드로후서/3-61 1,553

요한일서/5-105- 2,517

요한이서/1-13-298

요한삼서/1-14-294

유다서/1-25-608

요한계시록/22-404-11,952


신약  - 260장 - 7,957절 -179,011

신구약 - 1,189장 - 31,102절 - 788,258단어




메이데이 / 항공기 사고시 구조 요청(12-29-2024) 방콕 - 무안공항에서 181명 탑승 승무원 2명 꼬리 부분에서 구조



긴급 조난신호 메이 데이(Mayday)의 뜻과 유래


영화에서 비행기가 추락하거나 비상착륙을 해야 할 상황이 오면 조종사들이 무선으로 보내는 신호가 바로 '메이데이' 입니다.
긴박하게 메이데이~ 메이데이~ 메이데이~ 라고 외치는 장면은 다들 한번쯤을 보셨을 텐데요.
왜 Mayday라는 단어가 긴급조난신호로 사용되게 된 것일까요?

메이데이는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띄어쓰기를 해서 May Day 라고 하면 5월 1일 노동절을 뜻하기도 하구요.
긴급조난신호로 사용되는 메이데이는 이와 구분해 붙여쓰기를 해서 Mayday 라고 표기합니다.

무선전신에서의 대표적인 긴급조난신호는 SOS이지만, 목소리가 전달되는 무선통신에서의 긴급조난신호는 바로 이 메이데이입니다. SOS가 아무런 뜻 없이 단순히 모스부호의 단순한 조합을 찾다가 만들어진 단어인 것 처럼 Mayday도 노동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꽤나 단순한 이유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메이데이는 1923년 런던의 크로이든 공항 항공 무선사였던 프레드릭 먹포드가 항공기나 선박들이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구조신호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면서 만들어낸 단어인데요.
그 유래는 바로 불어의 Viens m'aider (나를 도와달라) 입니다.

당시만해도 대부분의 항공기 운항이 영국 크로이든 공항과 프랑스 부르제 공항 사이에서 주로 이루어지던 시절이었고, 지금과 비교해 프랑스어의 사용이 국제적으로도 아주 빈번하던 시절이었답니다.
그런 이유로 프랑스어 Viens m'aider 에서 m'aider(메데)와 비슷한 발음을 가진 영어단어를 선택하면 프랑스어와 영어사용자 모두 쉽게 사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m'aider와 비슷한 발음 가진 Mayday를 긴급 조난신호로 사용하게 된 것이죠.

비와 비슷한 사례로 메이데이보다는 덜 긴급하지만 고장이나 응급환자 발생 같은 긴급상황이 발생했을때 송출하는 조난신호인 판판(Pan-Pan)이 있는데요.
이 또한 고장, 작동불능을을 뜻하는 프랑스어인 Panne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메이데이가 발음의 유사성으로 긴급 조난신호로 선택되었다니 재미있는 사연이죠?
그리고 Mayday는 다른 단어 뜻과 구분하기 위해 송출할 때 반드시 3번 반복하도록 되어 있는것이 원칙입니다.
SOS의 모스부호가 같은 신호 3번 반복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이또한 어떤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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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예화 자료


1월 5일(주일)
주제 / 될 사람과 안 될 사람
성경 / 잠언 1:7. 베드로전서 2:21
인물 / 요한복음 13장 - 베드로, 가룟 유다

(이야기 자료) 박윤선목사 시편 주석  p. 144

어느 청년이 길을 가다가 2달러짜리 지폐를 주웠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그는 길을 걸을 때마다 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하여 40년 동안 그는 29,516개의 단추와 54,172개의 핀과 7페니를 주워 모았다.
햇볕의 따스함, 친구들의 미소, 새들의 노래, 꽃과 나무와 푸른 하늘의 아름다움은 볼 수 없었다.
더구나 다른 사람을 돕는 일과 하나님과 함께 하는 가치 있는 삶을 잃어버린 것이다.
잘못된 방향과 목적은 비참한 결과에 이를 것이라는 교훈입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주의 얼굴을 구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일생동안 땅만 바라보던 육체는 목과 허리가 굽어지고 말았습니다.
눈은 근시가 되고 마음은 여유가 없는 사막화가 되며 성질은 고약하고 인색해지고 말았습니다.

(이야기 자료) 이비커스의 학

주전 약 5세기에 희랍에 "이비커스"라는 유명한 시인이 고린도에 가까운 촌에 여행을 갔다가 어떤 산골짜기에서 강도를 만나 있는 것을 다 빼앗기고 매를 맞아 죽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너무 억울해서 죽기 전에 크게 외치기를 마침 그 주위를 빙빙 떠돌고 있던 학을 보고 하는 말이『너 학은 내가 이런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것을 보니 내가 죽은 다음에도 원수를 갚아 달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 말을 강도가 다 들었습니다.

그 후 여러 달이 지나도 그 도적을 잡을 길이 없고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고린도의 노천 극장에서 연극을 하게 되어 많은 사람이 모여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학 몇 마리가 공중에 날아와서 빙빙 돌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학은 어떤 사람에게 거의 머리에 닿게 날았습니다.
그러니까 거기 앉았던 사람 가운데 어떤 사람이 외치는 말이『아 이비커스의 학이 여기 원수 갚으려고 오누나』하로 말을 했습니다.
옆에 있던 사람이 그 말을 듣고 알아보니 그 사람이 도적이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회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될 사람은 이러한 삶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 자료 참조 / 2025년 설교 자료(신년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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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삼창의 의미

왜 한국교회는 통성 기도를 시작하며 주여 삼창을 외치는가?

언제부터일까?
누가 처음 시작하였을까?

오늘날 한국 개신교회의 상당수가 ‘통성기도’를 시작하기 직전에, 먼저 ‘주여 삼창’ 곧 ‘주여! 주여! 주여!를 3번 연창한 후에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교회용어사전」에서 ‘주여 삼창’이란 용어는 성경적으로나 신학적으로도 그 근거가 없는 표현이므로 삼가야 한다고 했다. 

또 「교회용어 바로쓰기」 책에서도, ‘주여 삼창’은 바람직한 행위가 아니며 성경적 근거가 없는 용어라고 했다.

그리고 「예장대신총회법규집」에도 공예배 시에 ‘주여 삼창’을 사용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했다.

이처럼 공신력 있는 여러 개신교 관련 책들과 유관기관에서도, ‘주여 삼창’은 반기독교적이며 비성경적이라고 비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시행되고 있다.

또 대부분의 개신교 목사들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이 고질병은 중독성이 너무 강해서 한 번 맛들이면 중독되는 마약처럼, 치료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한국 개신교에서 ‘주여 삼창’을 합리화하기 위해 내세우는 주장은 대체로 두 가지이다.

그중에 하나는 다니엘 9장 19절에 나오는 ‘주여’라는 단어들이며, 또 하나는 하나님이 ‘삼위일체’이기 때문에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이렇게 세 분을 향해, ‘주여 삼창’을 부르는 것이라고 한다.

그럼 먼저 이 두 가지에 대해 살펴보고, 다른 견해들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다니엘 9:17-19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시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한글개역개정성경)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을 위해, 다니엘이 하나님께 드린 기도가 소개되고 있다.
즉 다니엘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가 된 후 70년 만에 포로생활이 끝나 자유케 되리라는 것을 확신하였다.
그는 이 수치스러운 포로 생활을 끝내기 위해서는, 백성들의 죄악이 해결되어야 함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주님의 긍휼을 의지하여 사죄와 선민의 회복과 예루살렘 성의 회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였다.

한국 개신교에서는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주여! 주여! 주여!”를 세 번 외치는 것을 ‘주여 삼창’이라고 한다.
하지만 본문(단 9:19)에서, 다니엘은 ‘주여’라고 세 번 연호하지 않았다.

본문 19절에서 ‘주여 들으소서’라고 했는데, 이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기도이지, ‘주여’라는 구호가 아니다.
이것은 17절에 나오는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라는 내용의 기도이다.

또 19절의 ‘주여 용서하소서’라는 것도 기도 내용이다.
이는 18절에 나오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라는 내용의 기도이다.
그리고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라는 것도 19절 후반부와 같이 ‘이 일을 지체하지 말고 행하소서’라고 하는 기도이다.

따라서 다니엘 9:19은 ‘주여 삼창’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가 되지 못한다.
다시 말해 ‘주여 삼창’을 가르치는 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주여’라는 단어만 세 번 나타나 있는 구절을 찾아서 갖다 붙인 것에 불과하다.


하나님이 ‘삼위일체’이기 때문에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이렇게 세 분을 향해 ‘주여 삼창’을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알아보자.

개신교 신자들은 기도할 때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각각 한 번씩 부르면서 ‘주여 삼창’을 해야 하는가?
성경에는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성삼위 하나님을 각각 따로 부르고 기도하라는 가르침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오늘날 은사주의자들 가운데, ‘성령이여! 성령이여!’라고 하면서, 성령께 기도하고 성령께 영광을 돌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는 성경의 가르침과 거리가 멀다.
성경 어디에도 신자들이 ‘성령께’ 기도한 사례는 없다. 로마서에서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며 우리를 위해 친히 중보하시는 분이라고 했다(롬 8:26).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너희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마 6:6).”고 했다.

이처럼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하셨다.
또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면 그분께서 그것을 너희에게 주시리라(요 16:23).”고 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삼위일체’ 하나님을 각각 불러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성경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옳지 않다.
우리는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에는 ‘주 너의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현은 있지만 성령을 가리켜서 ‘주님’이나 ‘주 성령’이라고 부른 예는 없다. 그러므로 ‘주여 삼창’은 삼위일체 하나님과는 무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 이 외에도 ‘주여 삼창’의 유래에 대해 몇 가지 잘못된 견해들이 있는데, 이에 대해 알아보자.

1) 먼저, 하나님께 ‘주여 삼창’을 크게 외치며 기도해야 효험이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사도행전 7장 60절에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고 했다. 이 말씀은, 스데반이 순교하면서 ‘주여’하며 크게 부르며 기도한 내용이다. 또 마태복음 9장 27절에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라고 했다. 이 말씀에서 두 맹인이 ‘소리 지르며 말했다’고 했다.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사람이 크게 소리 지를 때’에, 스스로 결단하는 마음을 심어주면서 다른 생각이 틈타지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다. 또한 신자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할 때, 그분의 긍휼로 인하여 기도 응답을 받는 것이지, 사람들의 목소리 크기의 정도에 비례해서 기도 응답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벙어리의 기도에도 응답하시는 분이다.

2) 다음으로, ‘주여 삼창’을 외침으로써, ‘마음의 답답함과 억울함을 토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시편 62편 8절에,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나처시로다.”라고 했다. 이처럼 피난처되신 하나님 앞에 나와 마음을 토하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 하지만 기도는 하나님 앞에 쏟아붓는 넋두리나 신세한탄이 아니며, 하나님은 감정적 화풀이 대상도 아니다. 위로자이신 성령님께서 신자들을 위로하시고 참 평안을 주신다고 했다(요14:26). 이는 ‘주여 삼창’을 부르짖는 감정의 발산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위로이므로 넋두리와 신세한탄과 같은 인위적인 행위는 삼가고,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평안을 고대해야 한다.

3) ‘주여 삼창’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관심과 주목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구약성경 열왕기상 18장 27-28절에 “정오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이르되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길을 행하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이에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더라”고 했다. 이 말씀처럼 바알 선지자들은 큰 소리로 자기 신들을 부르고 신의 주목을 받기 위해 칼과 창으로 피가 흐르도록 자신들을 상하게 했다.

하지만 엘리야는 바알 선지지들처럼 큰 소리가 아닌, 평소와 같이 기도하며 ‘응답하옵소서’라고 했다(왕상18:37). 이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평소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의 마음과 생각과 언행을 알고 계시므로, 바알 선지자들처럼 큰 소리로 부르거나 칼과 창으로 자기 몸을 상하게 하는 유별난 짓을 할 필요가 없다. 단지 신자들은 엘리야처럼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분간할 수 있는 영적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 이제 ‘주여 삼창’이 비성경적이라고 주장한 책들을 살펴보자.

(사례 1) : 「교회용어사전」의 ‘주여 삼창’에 대한 견해

기도할 때, 예배 진행자의 제안으로 “주여, 주여, 주여.”하며 고성으로 ‘주여!’를 ‘3창’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왜 기도를 시작할 때 이렇게 3회 연속으로 소리 지르고 하나님을 불러야 하는 것일까? 아마 기도하는 사람의 종교적 열심을 나타내기 위함일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다함께 합심해서 한 목소리로 소리를 지름으로 기도에 서툰 성도도 기도에 담력을 얻게 하기 위함일는지 모른다. 어쩌면 이를 통해 집회의 감성적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런 ‘주여 3창’은 성경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가? 한 마디로 성경에서, ‘주여 3창’은 없다. ‘창(唱)’이란 인격적 존재를 부르는 호칭이 아니라, 노래나 구호나 함성을 외치는 것을 말한다. 결국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부를 때는 ‘창’이란 말을 사용하면 안 된다. 또 ‘주여 3창’은 기도하는 사람의 열정을 드러내고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각성시키기 위한 무력 시위 같은 느낌을 지을 수가 없다(중략). 그러므로 ‘주여 3창’과 같은 잘못된 신앙 습관을 배격해야 한다.

(사례 2) : 「교회용어 바로쓰기」 책의 ‘주여 삼창’에 대한 견해

한국 개신교회에서 사용하는 ‘주여 3창’은 다분히 무속적이며 미신적인 의미가 있다. 무속과 미신은 계시종교에서 절대자의 계시의존과 계시근거에서 신앙행위를 하는 것과는 달리, 어떤 힘을 가진 신을 찾기 위해서 강신(降神)을 위해 부르짖고 절규하는 지극히 인위적인 행위로 올바른 영성적 행위는 아니다. 또 ‘주여 3창’이 기도의 담력이나 기도의 대중적 분위기 조성이나 호소력에 강조점이 있다는 것도 맞지 않다. 기도는 하나님이 인간의 소원에 맞추어 달라는 뜻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코자 하는 영적 행위이며 하나님의 뜻에 근거를 두는 것이다.

기도의 조건으로서 간절성과 호소력이 필요하지만,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합의한 조건이 응답의 필수조건이다. ‘주여 3창’이 기도자의 의지의 표현이거나 어떤 언어의 반복 사용과 누적이 공적이 될 수는 없다. 그리고 기도의 과잉열정이나 통성의 고조 등을 통한 집회 분위기를 흥분시키는 인위적 유도행위는 언약과 계시의존적 신앙은 될 수 없다. 따라서 ‘주여 3창’은 기도에서 주님을 인격적으로 호칭하는 것이 아니라, 환호적이고 구호적인 연창이므로 배제되어야 할 것이다.

- 위의 사례들에서 ‘주여 삼창’이 비성경적임을 살펴보았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회가 있는 곳이면 전국 어디서나 요란하면서도 울부짖는듯한 소리로 통성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통성기도 시에 집회를 주관하는 대부분의 목사는 ‘주여 삼창’을 세 번 연창할 것을 교인들에게 요청한다.
한국 기독교계에서는 이 “통성기도와 주여 삼창”을 한국 개신교가 개발하고 창안한 놀라운 영적 유산으로 여기며 가슴 뿌듯한 자긍심을 갖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하여 자신이 한국 개신교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한다.
이러한 가운데 어떤 목사들은 다른 나라에 가서도 한국식 통성기도와 주여 삼창을 한국에 있을 때처럼 외국에서도 그대로 실행해 왔다.

그래서 외국의 개신교인들 중에는 이러한 한국 교회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리하여 그들은 한국식 통성기도를 영어로 ‘Korean prayer’라 칭하기도 했다.
이제는 외국에서도 한인교회를 통하여 한국식 통성기도와 주여 삼창을 들을 수 있게 되었고, 심지어 외국인들도 한국식 통성기도와 주여 삼창을 모방하여 시행하는 교회도 있다고 하니, 참으로 한인교회 목사들의 공로는 크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20년 이후로는 ‘코로나 19’라는 전염병으로 말미암아, 그 왕성했던 ‘통성기도와 주여 삼창’을 예전처럼 듣기 어렵게 되었다.
왜냐하면 개신교회 내에서 코로나 19의 집단 감염이 많이 발생함으로 인하여, 국가에서 코로나 19의 감염의 큰 원인이 되는 ‘통성기도(주여 삼창)’를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올바른 성경 학자들은 개신교 집회 때마다, ‘통성기도’와 함께 ‘주여 삼창’을 부르짖으며 집단으로 기도하는 행태가 성경에 나타나 있는 기도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차제에 한국 개신교 목사들은 코로나 19 전염병은 차치하고라도, 비성경적이며 반기독교적인 한국식 ‘주여 삼창(통성기도)’에 대해 진지하게 성경적으로 성찰한 후, 이것들을 영구히 폐지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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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기도의 표본적인 문체는 ‘주기도문’ 외에는 인간이 본문대로 표본을 삼을 근거는 없다. 그리고 3이라는 수적 개념이 어떤 완성적 또는 완전의 의미가 있을 수 있으나 기도의 첫 머리에 도입할 이유는 없다. 부르짖음의 회차의 누적이 기도의 절실성이나 간절성을 반영하는 것이 되고 기도의 공적 요소가 된다면 기도와 신앙의 외형주의가 될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위대하신 중보적 공로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주여 3창’이라고 할 때 다분히 무속적, 미신적인 의미가 있다. 무속과 미신은 계시종교에서 절대자의 계시의존과 계시근거에서 신앙행위를 하는 것과는 달라서 어떤 힘을 가진 신을 찾기 위해서 강신 또는 초신을 위해서 부르짖고 절규하는 지극히 인위적인 행위로 종교 심성적인 열광적 표현과 유사한 것이니 바른 영성적 행위는 아니다. 또한 '주여 3창'이 기도의 담력이나 기도의 대중적 분위기 조성이나 호소력의 강조점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부당한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이 인간의 소원에 맞추어 달라는 뜻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코자 하는 그의 선한 뜻을 신앙으로 확인하는 영적 행위인 것으로써 하나님의 뜻에 근거를 두는 것이다.

 하나님의 필요기준은 인간의 요구기준과 일치하지 않는다. 기도의 조건으로 간절성, 호소력이 필요하지만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조건이 응답의 필수조건이다. 기도의 과잉열정, 통성의 고조 등을 통한 집회 분위기를 흥분케 하기 위한 인위적 유도행위는 언약과 계시의존적 신앙이 될 수 없다. 그런고로 ‘주여 3창’은 기도에서 주님을 인격적으로 호칭하는 것이 아니라 환호적이고 구호적인 연창이므로 기도의 어체가 될 수 없어 반드시 갱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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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삼창의 유래

1. "주여" 삼창의 유래

중국에서 제사 지낼 때의 "만세(萬歲)!" 삼창(三唱)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의식에 사용되어 왔으며, 이를 새벽 기도할 때에 부흥사들이 원용하여 "주여!" 삼창이 이어져 왔다는 가능성을 기록된 곳이 있으나, 신뢰할 만한 문서 기록으로 남겨진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천주교에서 미사 후에 "엄마" 삼창을 하는 것을 인터넷에서 보았습니다.

  
2. "주여!" 삼창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1) 같은 말을 되풀이함으로 강조(强調)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사 6:3]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렘 7: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겔 21:17] 내가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려니와 이것도 다시 있지 못하리라 마땅히 얻을 자가 이르면 그에게 주리라

[단 9:19]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바 됨이니이다.

2) 크게 부르짖음으로 강청(强請)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행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마 9:27]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가실쌔 두 소경이 따라 오며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3) 크게 소리 지를 때에 결단(決斷)하는 마음을 심어주고, 

다른 생각이 틈타지 못하게 하는 최면(催眠) 효과가 있습니다.

  
3. "주여!" 삼창이 비성경적이라는 입장에서

1) 성경에서 가리키는 '주'(主, lord)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개역한글 성경에 '주여'라는 호칭이 구약에 100회, 신약에 107회로 207회 나옵니다. 

그것을 분류하면 크게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삿13:8)을 가리킵니다.
'여호와'(창 18:32; 출 15:17)대신 사용한 경칭입니다. 

기원전 6세기에는 유대인들이 회당에서 성경을 읽고 시편을 노래할 때,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감히 부르지 못하여, ' 아도나이'(나의 주님)라는 명칭으로 대신하였습니다. 

기원전 2세기에는 아도나이 를 '퀴리오스'(Kyrios)로, 라틴어로는 '도미누스'로 번역되었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마 16:16; 막 8:29; 눅 13:26; 요 11:27; 행22:8)를 가리킵니다. 

신약에서는 하나님(여호와)을 가리키던 '주'(퀴리오스)를 예수님과 관련시켰습니다.

(3) 주인. 소유자. 상급자를 가리킵니다(창23:15,44:7;삿4:18).

  
2) "주여!" 삼창에서 가리키는 '주'(主, lord)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기도의 대상이 '성부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을 가리켜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주'라 칭호하면 대부분 '하나님'을 가리키나,  신약시대에는 대부분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기도의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라 '예수님'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아버지여!"라고 호칭하고, '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명하셨습니다(마 6;9; 눅 11:2).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아버지여!' 라고 호칭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마 26:39; 막 14:36; 눅 10:21; 요 12:27). 

그렇다면 "주여!" 삼창은 기도의 대상을 잘못 정한 부르짖음입니다.

“헛된 부르짖음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전능자가 돌아보지 아니하심이라”(욥 35:13) 

3) 하나님께 유기(遺棄)된 자에게 반복된 "주여 주여"를 사용하였습니다.

성경에 "주여"라는 호칭이 반복 된 곳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 사용의 경우를 살펴보면 '주님'으로부터 유기된 경우였습니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줄 생각하느니라"(마6:7)는 말씀과 맥이 통하는 것 같습니다. 

[마7: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2]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 25:11]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눅 6:46]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눅 8:24]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4) "주여" 삼창의 성경 근거가 잘못 해석되었습니다.

"주여!" 삼창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내세운 성경말씀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바 됨이니이다"(단 9:19)는 "주여!" 삼창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 말씀은 "주여"의 반복이 아니라 

①  주여 들으소서.
② 주여 용서하소서.
③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의 세 가지 기도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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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삼창으로 시작하는 기도 / 성경적 근거

우리들은 간절히 기도할때 “주여” 삼창을 부르짖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있을까요?
성경에는 분명히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니엘 9:19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O Lord, listen! O Lord, forgive! O Lord, hear and act! For your sake, O my God, do not delay, because your city and your people bear your Name.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들으시고 행하소서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다니엘이 황폐한 상황을 하나님께 아뢰며
자기의 기도를 들어 달아고 간청할때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첫번째 “주여”는 나의 기도를 들어 달라고 강청하는 “주여”입니다.

두번째 “주여”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부르짖는 “주여”입니다.

세번째 “주여”는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주님께서 속히 행동으로 옮겨 달라고 부르짖는 “주여”입니다.

우리가 기도할때 아무런 생각없이 “주여”라고 삼창을 부르짖기 보다는 “들으시고”, “용서하시고”, “행하시 옵소서”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주여” 삼창을 부르짖으면 은혜가 더 충만할 것이며 응답을 기다리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겠습니다.

자료 사용 / 11-27-200(주일) 파트리스교회 주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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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삼창과 엄마 삼창, 글 김문수


제가 어릴 때 다니던 교회는 예배 분위기가 항상 엄숙하고 조용하며 질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나아갈 때에는 항상 깨끗하고 단정한 모습을 해야 한다고 배웠기에, 다들 마음 뿐만
아니라 차림새에도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깨끗한 옷, 단정한 머리 모양, 바른 자세는 기본이었고, 아무리
날씨가 더워도 슬리퍼, 초미니스커트, 민소매 옷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예배 음악을 위해서는 피아노와 오르간만 쓸 수 있었고, 드럼, 기타, 신디싸이저 등은 쓸 수 없었습니다.
회중들이 다 모여서 드리는 공적인 예배시간에는 손뼉을 치면서 찬양하는 것이나 옆사람에게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기도하는 것도 금했습니다.

그러다가 고등학생 시절에 새로 전도사님 한 분이 오셨는데, 그 분과 학생회 수련회에 가서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여 크게 외치며 기도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 분은 목소리를 높여서 통성으로 기도를 시작할 때에는 항상
"주여! 주여! 주여~" 라고 주를 크게 세 번 부르고 기도하도록 가르쳤습니다. 그 때에는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별로 생각해 보지도 않고, 그래야 하나보다 생각하고 그대로 따라했습니다. 그 후, 부흥회나 수련회와
같이 교회에서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에는 그렇게 "주여 삼창"을 하면서 기도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왜 기도할 때 "주여 삼창"을 해야 하는지, 이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저도 이해를 못했고,
"주여 삼창"을 가르치는 분들에게 물어봐도 선명한 대답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분들의 답변이라는 게
대부분 "크게 외쳐야 하나님이 잘 들어주신다"는 정도였으니까요.
성경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나 그 분의 사도들이 혹은 구약시대 믿음의 선배들이 기도하기 전에,
"주여 삼창"을 했다는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도대체 한국 교회에만 있는 이 "주여 삼창"이라는 것은
어떤 배경에서 등장한 것인지, 또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과연 성경의 가르침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1. "주여 삼창"을 가르치는 자들의 주장
"주여 삼창"이란,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주여! 주여! 주여~" 하고 세 번 외치는 것을 말합니다. 본래
창(唱)이란 "노래하다"라는 뜻이기 때문에, 이 경우 삼창이라고 하기보다는 "연호(連呼): 구호를 연이어 외침"
라고 하는 것이 맞겠지만, 이 글에서는 현재 통용되는 용어 그대로 "주여 삼창"이라고 쓰겠습니다.
"주여 삼창"을 가르치는 자들은 그 근거를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들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삼위일체이시기 때문에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이렇게 세 분을 부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둘째는, 다니엘 9장 19절을 근거로 이것이 성경적 근거가 있다고 합니다.
(단 9:19, 킹흠정) 오 주여, 들으소서. 오 주여, 용서하소서. 오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오 내 하나님이여,
주를 위하여 지체하지 마옵소서. 주의 도시와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불리나이다.
또한 "주여 삼창"을 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여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며(렘 33:3),
크게 외쳐서 우리의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을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 쏟아놓아야 한다는 등의 이유를
들기도 합니다.
이런 주장들이 과연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는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기도할 때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각각 한 번씩 불러야 하는가?
성경에는 우리가 기도할 때에 성삼위 하나님을 각각 따로 부르고 기도하라는 가르침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늘날 신비주의자, 은사주의자들은 "성령이여~ 성령이여~" 하고 성령께 기도하고, 성령께 영광을 돌리기도
하지만 이는 성경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멉니다(요 16:14). 성경 어디에도 성도들이 "성령님께" 기도한 사례가
없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며 우리를 위해 친히 중보하시는 분입니다.
(롬 8:26, 킹흠정)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께서 말로 할 수 없는 신음으로 친히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마 6:6, 킹흠정) 오직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으로 들어가 네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그리하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네게 드러나게 갚아 주시리라.

(요 15:16, 킹흠정) 너희가 나를 택하지 아니하고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것은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남아 있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그분께서 그것을 너희에게 주게 하려 함이라.
(요 16:23, 킹흠정)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구하지 아니하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면 그분께서 그것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그러므로, 기도할 때에 삼위일체 하나님을 각각 불러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성경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성경에는 "주 너의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 라는 표현은 있지만, 성령님을 가리켜서
주님이라고 부른 예는 없습니다.

둘째로, 다니엘 9:19은 "주여 삼창"의 근거가 될 수 있는가?
다니엘 9:19을 그 앞에 나오는 17, 18절과 같이 비교해 보면, 그들의 주장과는 달리 다니엘은 "주여"를
세 번 연호한 적이 없습니다.
(단 9:17-19, 킹흠정) [17] 오 우리 하나님이여, 그러하온즉 이제 주의 종의 기도와 그의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이 황폐한 주의 성소에 빛을 비추게 하옵소서.
[18] 오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주의 눈을 여사 우리의 황폐함과
주의 이름으로 불리는 도시를 보시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의로 인하여 주 앞에서 우리의
간구를 드리지 아니하고 주의 크신 긍휼로 인하여 간구를 드리나이다.
[19] 오 주여, 들으소서. 오 주여, 용서하소서. 오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오 내
하나님이여, 주를 위하여 지체하지 마옵소서. 주의 도시와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불리나이다.
다니엘 9:19에 나오는 "오 주여, 들으소서" 이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기도이지 "주여"라는 구호가 아닙니다.
이는 9:17에 나오는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소서"라는 내용의 기도입니다. "오 주여, 용서하소서"
이것 역시 그 자체가 하나의 기도입니다. 이는 18절에 나오는 "주의 긍휼로 인하여 간구하오니 그 긍휼로
우리를 용서하소서"라고 용서를 비는 기도입니다. "오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라는 것도
19절 후반부에 기록된 바와 같이 "주의 도시와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니 주님 자신을 위하여
이 일을 지체하지 말고 행하소서"라고 하는 기도입니다.
따라서, 다니엘 9:19은 "주여 삼창"의 근거가 되지 못하며, "주여 삼창"을 가르치는 자들이 자기들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주여"라는 단어가 세 번 등장하는 구절을 찾아서 갖다 붙인 것에 불과합니다.

2. "주여 삼창"의 기원
"주여 삼창"을 외치는 의식은 성경의 가르침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 기원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이는 동양의 제사의식과 무속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여 삼창"의 모태가 되는 것은 "만세 삼창"인데, 이 만세 삼창은 중국에서 한무제가 숭산에서 제사를 지낼때
신하와 백성들이 만세를 삼창한데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고대 중국의 황실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신하들이 황제 앞에서 충성을 맹세하거나 은혜에 감사할 때 "만세, 만세, 만만세"라고 외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아래 시는 김소월의 "초혼(招魂)"이라는 시 중 일부입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 허공중(虛空中)에 헤어진 이름이여! / 불러도 주인(主人)없는 이름이여! /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 심중(心中)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였구나 /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초혼이란 죽은 이의 혼령(넋)을 불러들이는 의식인데, 사람이 죽으면 죽은 이의 저고리를 왼손에 들고
지붕이나 마당에 서서 북쪽을 향하여 망자(亡者)의 이름을 크게 세 번 부른다고 합니다.
"주여 삼창"이라는 것은 전혀 성경적인 근거가 없는 동양 문화의 산물이며, 동양의 제사의식, 황제 숭배,
초혼의식 등을 혼합하여 만든 종교의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3. "주여 삼창"을 하고 기도해야 하는가?
(1)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기도를 들으시는가?
(렘 33:3, 개역)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 33:3, 킹흠정) 나를 부르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응답하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능력 있는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
(렘 33:3, KJV) Call unto me, and I will answer thee, and shew thee great and mighty things, which thou knowest not.
개역은 "부르짖으라"라고 번역했지만, 킹제임스성경에 나오는 call 이라는 단어는 목청 터지게 외쳐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귀머거리가 아닙니다. 그 분은 우리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시는 분입니다.
(사 59:1, 킹흠정) 보라, 주의 손이 짧아져서 구원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요, 그분의 귀가 둔하여서 듣지
못하는 것도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우리는 주의 공로를 힘입어
은혜의 왕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서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주의 뜻대로 기도할 때
그 분의 긍휼로 인하여 기도 응답을 받는 것이지, 우리의 목소리 크기가 기도 응답을 결정짓는 것이 아닙니다.

(2) "주여 삼창"으로 마음의 답답함과 억울함을 토로하는가?
피난처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우리의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은 필요합니다.
(시 62:8, 킹흠정) 백성들아, 너희는 언제나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 앞에 너희 마음을 쏟아 놓으라.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피난처시로다. 셀라.

그러나, 기도는 하나님 앞에 쏟아놓는 넋두리나 신세한탄이 아니며, 하나님은 우리의 감정적 화풀이 대상도
아닙니다. 위로자이신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로해 주실 때, 참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는 "주여"라는
구호를 세 번 크게 외쳐서 얻는 감정의 발산과는 감히 비교할 수도 없는 크신 위로입니다.
(요 14:26, 킹흠정) 위로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님 그분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말하였든지 너희가 그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하시리라.


(3) "주여 삼창"으로 하나님의 관심과 주목을 끌 수 있는가?

주께서 내 행동과 생각과 말을 다 알고 계시는데, 그 분의 관심을 끌기 위한 목적으로 "주여"를 외칠 필요가 있을까요?

(시 139:1-4, 킹흠정)
[1] (악장에게 준 다윗의 시) 오 주여, 주께서 나를 살피시고 나를 아셨나이다.
[2]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서는 것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이해하시오며
[3] 나의 행로와 나의 눕는 것을 둘러싸시므로 나의 모든 길을 익히 아시오니
[4] 보소서, 오 주여, 내 혀의 말 중에 주께서 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도 없나이다.

만약 여러분이 믿고 있는 하나님이 다른 손님과 만나 이야기하고 있거나, 누군가를 쫓아가고 있거나,  여행 중에 있거나, 자고 있다면 크게 소리 질러서 깨우시기 바랍니다.

(왕상 18:27-28, 킹흠정) [27] 정오에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이르되,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이므로
지금 이야기하고 있거나 쫓아가고 있거나 여행 중에 있거나 혹은 자고 있으니 반드시 깨워야
하리라, 하매 [28]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고 자기들의 규례에 따라 몸에서 피가 철철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자기 몸을 찢었더라.
바알 숭배자들은 큰 소리로 자기 신들의 이름을 부르고, 신의 주목을 끌기 위해서 칼과 창으로 피가 흐르도록
자기 몸을 상하게 하였습니다. 반면, 엘리야는 그렇게 목 놓아 외쳐 부른 것이 아니라 보통 때와 같이
주께 말했습니다. 왕상 18:36에는 "엘리야가 가까이 가서 이르되"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리야는 주의
이름을 크게 외쳐 부르거나, 제단 주변에서 날뛰거나 하면서 주의 관심을 끌고자 하지 않고 그냥 평범하게
주께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는 응답되었습니다.

(4) "주여, 주여" 연호한 사례

성경에는 "주여, 주여"라고 주를 연이어 부른 사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이렇게 연이어
"주여, 주여" 라고 부른 구절들은 아래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부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성경의 용례에 의하면, 주로 주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자들이 "주여, 주여"하고 외칩니다.
(마 7:21, 킹흠정) 내게,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다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오직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2, 킹흠정)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이르기를,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대언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많은
놀라운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 25:11, 킹흠정) 그 뒤에 다른 처녀들도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하나
(눅 6:46, 킹흠정)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들은 행하지 아니하느냐?

이 글의 취지는, 기도할 때 주님께 "주여~" 라고 부르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 갈급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주를 찾으시는 분들은 "주여~" 라고 부르며 기도하십시오. 저는 그런 분들을
향하여 비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근거도 알 수 없는 "주여 삼창"이라는 종교 의식이 마치 성경적인 것처럼
교회 예배에 들어와 있고, 또 그 의미도 모른 채 목회자들이 가르치니까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고
무작정 따라 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런 의미없는 외침이 관습적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는 겁니다.
성경적 근거도 없고, 의미도 없이 통성기도 시작할 때마다 습관을 따라 혹은 기도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주여 삼창"이라는 구호를 외치는 것은 허공에 떠도는 공허한 부르짖음이 될 뿐입니다.
이제는 주여 삼창이 한국교회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한국 교회에서 외국으로 "주여 삼창"이라는
문화를 전파하여 외국에서도 "주여 삼창"을 외치는 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03784

참고로, 로마카톨릭의 미사에서는 그들이 하늘의 여왕이라고 믿고 숭배하는 마리아에게 "엄마 삼창"을 바친다고 합니다.
천주교 미사의 마리아에게 바치는 "엄마 삼창" (아래 링크 클릭)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16549829


http://blog.daum.net/_blog/BlogView.do?blogid=0GEXw&articleno=6307813&_bloghome_menu=recenttext#ajax_history_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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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삼창(三唱)?

말씀을 바르게 알고 , 바르게 믿고 , 바르게 행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알면서도 바르게 행하지 못하고 때론 알지 못하여 바르게 행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세 번 부르는 삼창(三唱?)을 신학적 의미가 '있다' '없다'의 측면에서 생각해보기 보다는 “주여!“ 삼창의 의미를 더 자세히 알고 간절히 기도한다면 은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아래의 글을 올려봅니다.

주여 삼창의 배경은 성경 다니엘서 9장 19절에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라는 말씀에서

1. 주여 들으소서 
2. 주여 용서하소서 
3.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이러한 의미를 품고 주여 삼창을 부르며 기도한다는 설과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각 위마다 지칭하여 부른다’는 설과 중국에서 제사 지낼 때의 "만세(萬歲)!" 삼창(三唱)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의식에 사용되어 왔으며, 이를 새벽 기도할 때에 부흥사들이 원용(援用) 하여 "주여!" 삼창이 이어져 왔다는 가능성을 기록된 곳이 있으나, 신뢰할 만한 문서 기록으로 남겨진 것은 없습니다. 


왜 ‘만세’를 외치고, ‘삼창’하는 것일까?

“대한독립 만세”, 왜 삼창을 했을까요?
일제강점시절에 우리 선조들은 처절한 광복운동에 전념했습니다.
1919년 2월 8일에 일어난 일본 도쿄 유학생들의 ‘2.8 독립선언운동’. ‘조선청년독립선언’이라고도 합니다.
총 11명의 조선청년독립단은 청원서와 선언서를 여러 나라의 대사관과 일본 정부, 국회, 신문사로 발송하고 유학생대회를 열어 일제침략행위를 설명하고 한국의 독립을 주장하는 ‘2·8 독립선언서’를 발표했습니다.
‘3·1 운동’ 발단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때에도 ‘대한독립 만세’를 삼창했습니다.

가장 큰 독립운동은 ‘3·1운동’입니다.
이것을 ‘3·1만세운동’이라고도 합니다.
비폭력 저항운동으로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 만세”를 부르는 것으로 저항하고 항거하고 국내외에 독립의 타당성을 알렸기 때문입니다.

국치 10년째 되던 해에 민족대표 33인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했고, 직후 임시정부가 발족하면서 중국을 무대로 치열한 독립운동에 들어갔습니다. 3·1운동에 앞장선 이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손에 손에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 만세”를 힘차게 외쳤습니다. 이토 히로부미를 육혈포로 쏴 죽인 안중근 의사, 홍구공원의 일본인들을 폭사시킨 윤봉길 의사 등 모든 독립열사들이 한결같이 외친 구호는 “대한독립 만세”였습니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유관순은 서대문형무소에서 고문으로 숨져가면서도 ‘만세’를 불렀습니다.

광복과 더불어 우리 민족이 침략자를 향하여 맘 놓고 부른 것이 ‘만세’입니다.
큰 행사나 작은 행사나 마지막을 장식하는 구호는 ‘만세삼창’입니다.
민족의 혼과 넋이 그 속에 들어있습니다.
행사를 시작할 때에는 국민의례로 조국과 민족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끝날 때에는 만세삼창으로 의지를 다집니다.

그런데 요즘 국민의례가 민중의례로 바뀌면서 국민의례를 생략하거나 간소화하고 만세삼창의 마무리를 하지 않는 행사가 적지 않습니다. 
‘만세’ 속에는 우리 민족의 혼과 하나 됨의 힘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만세삼창’은 어떤 행사를 막론하고 중요한 다짐이며, 비전을 실현시키는 의지의 표상입니다.

‘만세’(萬歲)는 ‘축복하는 뜻’으로 또는 ‘승리를 기뻐하는 뜻’으로, 두 손을 머리 위로 높이 들고 외치는 소리입니다.
‘만세’(萬歲)이 원관념은 영생의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개념이 확장되어서 관념, 물질 등이 영원하기를 원하는 것을 뜻하기도 하고, 더 확장하면 무언가를 응원하고 찬양하는 의미로 쓰입니다.

찬송가 중 “만세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라는 고백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만세반석’(萬歲盤石)은 오랜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바위 같은, 영원 세세토록 변함없고 무너지지 않는 반석.
다시말해 튼튼한 기반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적으로 비유한 말입니다.

성경은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린도전서 10:4)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세삼창’을 하는 이유는 숫자 ‘3’이 가지는 삼각형으로 안전성, 온전성을 가지는 완전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인생에 있어서 3이라는 숫자는 굉장히 의미있는 숫자이고 복된 숫자입니다.
그리고 신성한 숫자요, 기본적인 숫자이며 안정적인 숫자입니다.
생활 속에서 찾아보면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인생에서 기회는 3번은 온다’,
‘야구에서도 3번의 찬스는 있다’,
‘선수개인은 3진 아웃, 팀은 쓰리 아웃’, ‘재판도 3심제’, ‘중매를 잘하면 술이 석잔, 잘못하면 뺨이 석대’.
‘삼일천하’, ‘삼총사’, ‘3정승’(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피라밋 3각형’, ‘삼고초려’, ‘서당개 3년’. ‘작심삼일’등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 ‘고체 액체 기체’, ‘가위 바위 보’,

믿음과 신앙적 고백과 실천으로서의 숫자 ‘3’의 온전성은 ‘삼위일체’(성부, 성자, 성령),
‘3일 금식’, ‘주여 삼창’, ‘영혼육’, 성막(뜰, 성소, 지성소)의 세 장소 등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3번 기도를 하셨습니다.
성자로써 영화롭게 되시도록, 예수님의 제자들을 위하여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를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제삼시(아침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제구시(오후 3시)에 운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삼일만에 부활하셨고,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세 사도가 예수님의 변형된 영광을 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셋째 하늘에 이끌려 올라갔으며, 베드로는 예수님을 총 세번 부인했고, 그런 베드로를 세 번의 고백을 통해 마음을 치유하셨습니다.

재미있는 성경구절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아 33:3)는 말씀입니다. 완전 숫자가 3개 들어간 구절, 그것은 부르짖어 기도하면 응답하시고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주신다는 약속의 온전성과 확실성의 증거 아닐까요?

나관호 목사(뉴스제이 대표, 발행인 /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 치매가족 멘토 / 칼럼니스트 / 문화평론가 / 좋은생각언어&인생디자인연구소 소장 /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강의교수 /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선정 ‘한국 200대 강사’ / ‘미래목회포럼’ 정책자문위원 / ‘한국교회언론회’ 전문위원 )

작가, 문화평론가, 칼럼니스트,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와 '좋은생각언어&인생디자인연구소' 대표소장이다.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강의 교수, 치매가족 멘토로 봉사하고 있다, <나관호의 삶의 응원가> 운영자이며,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문화전략위원과 광고전략위원을 지낸 '커뮤니케이션 및 대중문화 분야 전문가'다. 또한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이며 '생각과 말'의 영향력을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 심리치료 상담과 NLP 상담(미국 NEW NLP 협회)을 통해 상처 받은 사람들을 돕고 있는 목사이며, '미래목회포럼' 정책자문위원, '한국교회언론회' 전문위원으로 한국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 또한 말씀치유회복사역(LHRM) 대표, 인터넷 신문 <뉴스제이>의 발행인 겸 편집인이다.



다음은 우주현 목사한국인의 기도(KOREAN PRAYER!)에 대한 글인데 많은 공감이 되어 올려봅니다.

제발! 주여~주여~주여~ 만세삼창하듯 부르짖지 마십시오.
이는 무당들이 귀신 부를 때 하는 짓(?)들과 같습니다.
제발! 교회안에서 기도할 때 큰소리로 부르짖어 다른 성도의 기도에 방해 되지 않도록 배려하십시오.
정말로 부르짖고 싶으십니까?
그러면 개인기도방으로 옮겨 부르짖으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신음소리도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이시며 또한 예수님도 그렇게 부르짖으며 기도하라고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귀 먹지 않으신 하나님
한때 한국교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교회성장신학’ 의 본산으로 유명한 미국의 풀러신학교 피터 와그너 교수로 아주 유명한 교수인데, 그는 특히 한국교회의 성장을 주목하고 자시의 교회성장의 한 모델로 한국교회를 지목했습니다.
물론 한국에도 여러번 다녀갔었으며 풀러신학교는 아마 가장 많은 한국학생이 유학하고 있는 학교일 겁니다.
그런데 그 분의 과목중에 교회성장과 기도에 대한 과목이 있는데, 그 과목의 수업시간에 피터 와그너 교수는 자신의 학생들에게 한국의 기도(Korean Prayer)라는 주제로 한국 특유의 기도를 소개하고, 또 학생들에게 실습도 시켰답니다.
피터 와그너 교수가 교회성장을 위한 특별한 기도로 소개하고 보급하려 했던 ‘KOREAN PRAYER’, 도대체 그게 뭘까요? ‘KOREAN PRAYER’로 소개된 그 기도는 ‘주여!’ 를 세 번 크게 부르고 이어서 큰 소리로 통성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재밌는 것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실습을 시키면서, 한국말 그대로 ‘주여!’ 를 세 번 부르게 했다는 것이지요.
미국 학생들이 ‘O, Load!' 가 아니라 한국말로 ’주여를 세 번 큰소리로 부르는 것, 상상해 보십시오.
재밌지 않습니까?
태권도의 용어에 이어 한국말 그대로 수출되고 있는 몇 안되는 우리의 문화수출 상품으로 ‘KOREAN PRAYER’ 당당히 자리하고 있습니
다. 

한국교회에 큰 관심을 두었던 피터 와그너 교수의 눈에는 그 ‘KOREAN PRAYER’가 아주 신기하기도 했으며 또 한국교회의 성장에 크게 기여한 중요한 부분이며, 또 아주 특별한 기도의 한 방법 이라고 생각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들리는 소식은, 그 피터 와그너 교수도 이제 한국교회의 성장은 끝났다고 진단하고, 한국 모델을 포기하는 대신 요즘엔 자신의 새로운 모델을 남미의 교회들에서 찾고 있다고 합니다.
‘KOREAN PRAYER’ 도 이젠 약발(?)이 떨어졌다고 판단한 것 같은데... 유명한 학자라서 그런지 역시 판단도 빠릅니다. 

외국 기독교인의 눈에 그 기도는 참으로 신기하고 또 특별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공식적이며 공개적으로, 열정적이며 시끄럽게 기도하는 경우는 아마 교회 역사에서도 두 번은 없었을 겁니다. 

주여! 삼창하고 이어서 큰소리로 통성기도 하는 것. 
구태여 기도원이 아니라도 일반적인 한국 교회에서 보편적으로 지금도 행해지고 있는 평범한 기도회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개교회에서의 일반적인 기도 시간에 - 특히 새벽기도나 철야기도 때 - 유독 큰 소리로 기도하는 분들이 꼭 있어서 가끔씩은 감정적인 마찰을 빚기도 하지요.
그러나 성경에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했는데 왜? 라고 말하면 또 달리 할 말도 없어서 그냥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과연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을까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가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예레미야 29장 12절도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부르짖으라‘라 말씀하고 있는 대표적인 이 두 구절의 말씀을 표준 새번역에서는 어떻게 번역하고 있는지 볼까요?

‘내가 나를 부르면, 내가 너에게 응답하겠고, 네가 모르면 크고 놀라운 비밀을 너에게 알려 주겠습니다.’(표준 새번역, 렘 33:3)

‘너희가 나를 부르고, 나에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의 호소를 들어주겠다’(표전 새번역, 렘 29:12)

개역 성경에서 ‘부르짖으라’고 번역된 부분이 모두 ‘부르라’로 번역된 것을 알수 있습니다.

영어성경을 보아도 ‘Call to me I will answer...',you will call upon me and come and pray...'모두 ’call'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부르짖으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카라’인데 이는 영어의 Call로서 부르고 찾으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부르다(Call)’와 ‘부르짖다(cry out, shout)'는 사실 완전히 다른 말이며, 부르짖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자앜’이라는 동사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카라’는 단순히 이름을 부르라는 뜻이지 부르짖으라는 의미는 분명 아닙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에 대한 인격적 신뢰와 믿음을 고백하는 것으로, 결국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 즉 하나님의 존재와 인격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 것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이 두 말씀은 우리에게 다시 보여 주며 가르치고 있을 뿐입니다. 

이 말씀은 한국교회가 적용하듯 열심히 크게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출발은 믿음의 고백, 즉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의 이름을, 그의 존재를, 그의 인격을 부른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의 첫 마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부르는 것, 이것이 바로 ‘카라’ 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올바른 지식은 없이 열심만 특심한 것이 사실 문제입니다.
누구보다 성경을 잘 믿는다고 생각하며 성경대로를 주장하지만 사실은 성경대로가 아니라 성경대로라 착각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전통을 믿는다고 말해도 크게 틀리다고는 못할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의 오류였음을 우리는 다시 환기하며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는 목소리 큰 사람들이 이기는 게임이 아닙니다. 
‘아버지’를 가진 사람들의 특권입니다.
그러면 큰 소리로 기도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까?
물론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간절함 때문에 부르짖을 수 밖에 없을 때가 물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큰 소리로 부르짖는다고 해서 더 간절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큰 소리로 부르짖는 게 더 간절하다면 주님께서 ‘네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기도하라(마 6:6)’고 가르치신 것이 틀린 것이 됩니다.
그리고 여럿이 함께 기도드리는 경우에는 더욱 더 자신의 큰 소리로 인하여 타인들이 방해받지 않게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제 경험과 관찰로는 큰 소리로 열심히 기도하시는 분들이 대체로 이기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이기적인 본성이 기도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큰 소리로 기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제가 판단한다면 지나친 편견일까요?
아무튼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자신보다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상식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성경속의 인물 중 간절히 기도한 사람의 경우로 어떤 분들이 주로 떠오르십니까?

저는 먼저 한나가 떠오릅니다.
사무엘서 1장에는 한나의 기도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자세히 살펴 보십시오.
1장 10절에 보면, 한나는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했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13절을 보시면 한나가 어떻게 통곡(?)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녀의 통곡은 속으로만 말하여서 입술만 동하였고 소리는 들리지 않는 이상한 통곡(?)이었습니다.
이런걸 우리는 통곡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개역성경은 통곡했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통곡(바카. bâkâh. 1058)  בָּכָה     
1. 울다.  2. 민 11:10. 3. 스 10:1.
발음 [ bâkâh ]
구약 성경  / 114회 사용
  • 1.  원형 울다, 통곡하다, 흐느끼다, 출2:6, 창43:30, 삼하19:2(1).
    • a. 원형 [공공 재난을 비통해하는 사람들에 대해 사용] 민11:10, 25:6.
    • b. 원형 [참회자의 슬픔에 대해 사용], 스10:1.
    • c. 원형 피엘형: 통곡하다 [죽은 자를 위해], 렘31:15, 겔8:14.
  • 문법설명  /  미완료형 יִבְכֶּה
    관련 성경  /  울다(창45:14, 민11:4, 삼하3:32), 애곡하다(신21:13, 애1:2, 시78:64), 통곡하다(삼하13:36, 스10:1, 왕하20:3), 애통하다(창23:2),곡하다(창50:3, 민14:1), 슬퍼하다(레10:6),[명] 애곡(욥30:31).
‘부르짖다’, ‘통곡하다’ 이런 단어들은 우리의 종교문화에서 비롯된 기도가 번역자의 선입견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그녀는 자신의 표현 그대로 ‘마음이 슬픈 여자(15절)’였습니다.
그러나 그 슬픔을 안고 기도할 때에 그녀는 통곡하거나  큰 소리로 부르짖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철저하게 절제하면서 오히려 핀 눈물을 삼키면서 기도했습니다.
참으로 마음이 슬펐던 여자, 한나의 기도는 한바탕 울음과 곡성으로 한을 푸는 기도가 분명 아니었습니다.
이어서 제게 떠오르는 인물은 당연히 엘리야입니다. 
그의 상황도 처절했음이 분명했는데... 그는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열왕기상 18장이 그 유명한 갈멜산의  결투 장면인데, 특히 바알 선지자들의 기도와 엘리야의 기도를 비교해 보십시오.
28절을 보시면 열받고 흥분한 바알 선지자들의 기도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저희가 큰 소리로 부르고...’ 참 알 수 없습니다.
오리혀 여기는 ‘큰 소리로 부르짖고...’라고 번역해야 하는데... 그러나 역시 표준 새 번역은 ‘더 큰 소리로 부르짖으면서...’라고 번역해야 하는데... 그러나 역시 표준 새 번역은 ‘더 큰 소리로 부르짖으면서...’라고 번역해 놓고 있습니다.
제가 표준 새 번역을 좋아하는 이유, 더욱 분명하지 않습니까? 

이 바알 선지자들의 기도 모습이 바로 히브리어로 ‘자앜’하는 -부르짖는, 울부짖는- 모습입니다.
반면 엘리야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36절)”,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זְעִק 제이크(zeʽîq)  

1. 부르짖다.  2. 외치다. 3. 단 6:20.
발음 [ zeʽîq ]
어원 / 아람어
구약 성경  / 1회 사용
  • 1. 원형 부르짖다, 외치다, 단 6:20.
       문법설명 / 2199와 일치함
  • 관련 성경  /  소리지르다(단 6:20).



대표적인 기도의 사람 엘리야의 기도 역시 기도는 열심의 문제가 아니라 바른 관계의 문제임을 다시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관계의 확인이며 믿음의 확인이지 나의 열심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며, 내 감정을 쏟아놓는 시간도 아닙니다.


사실 예수께서 가르치신 기도의 자세는 꼭꼭 숨어서 은밀하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기도를 가르치실 때에 먼저 지적하신 것은 알다시피 기도하는 자세였습니다.
기도를 가르치신 마태복음 6장 6절에 의하면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자세히 보면, 기도의 가르침인 6장 5~15절의 그 문단 속에서 오직 6절 말씀만 ‘너(you)'가 단수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즉, 너의 기도는 너 혼자서 너의 골방에서 문가지 걸어 잠그고 오직 너의 아버지께만 은밀하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지켜서 자신의 골방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부르며 은밀하게 기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런 개인 기도 시간과 공간을 갖기가 우리의 주거문화와 생활여건상 사실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함께 하는 기도라도 그 기도가 궁극적으로는 각 개인들의 골방기도가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결국 이같은 골방의 기도에 실패하면 자연히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큰 소리로 사람에게 보이려고(마 6:5)’ 기도하게 되고, 그래
서 결국 중언부언하게 되고, 큰 소리로 말만 많이 하는 기도가 됩니다(마 6:7).
그리고 그런 기도는 성경에서 이방인의 기도라고 하지 하나님 자녀들의 기도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혼자만의 골방에서 기도를 한다면, 때로 감정이 격해져서 부르짖는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삼상 15:11 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신다고 말씀하시자 그 밤에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분명히 ‘자앜’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방에서 온 밤을 사울을 위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때로는 부르짖어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울을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혼자 드리는 기도였으며 그가 흘린 눈물은 타인과 민족을 향한 사랑의 눈물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조금은 문제가 되고 있는 공적 기도시간에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과는 사실 차원을 달리하는 기도이지요.
바울 사도의 말씀처럼 ‘우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롬 14:16)’하는 것이 성숙한 성도의 지혜입니다.

열심히 기도한다는 그 선한 일이 왜 비방과 시비가 되어야 합니까?
우리는 기도에서도 먼저 타인을 배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열심히 부르짖어 기도했던 대부분의 기도들이 사실은 ‘개인의 정욕에서 비롯된 기도(약 4:3)’였음도 인정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때로는 우리의 감정을 시원케하는 -심하게 말하면 스트레스를 푸는- 기도일 때가 많았음도...

어제 성경을 읽다보니 전도서 말씀(전 5:2)에 이런 말씀이 있더군요.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니라.’

말을 적게 그리고 작은 소리로 하는 기도를 추구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기독교의 오랜 전통 가운데 있었던, ‘고요함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묵상하는 기도’이지요.
현대 개신교회에서는, 특히 한국교회에서는 거의 모르고 있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관심을 가지고 추구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우리 아버지는 당신의 자녀들을 향한 사랑 때문에 눈 멀기는 하셨지만 귀 먹진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는 우리의  신음조차 들으실 만큼 그 귀를 우리에게로 향하여 세우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네가 나를 부르면 내가 너에게 응답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 부끄러운 아들은 오늘도 가장 작고 낮은 목소리로 아버지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봅니다.

귀가 너무 밝으신 나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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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성 기도 때 주여! 삼창(三唱)에 대한 의미

어느 초신자가 처음교회를 출석하였는데 그 날이 광복절 날 이었습니다.
예배 중에 애국가를 제창하고 만세 삼창을 외치는 교인들을 보면서 "독립투사 정신이 강하게 남아있구나"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만세' 하면 삼일운동을 연상합니다.
8.15광복절을 기념합니다.
만세 삼창이 일본의 잔재이지만 우리의 문화로 발전하여 행사 때 마다 한 사람의 선창에 의하여 삼창을 하여야 기념식이나 의식이 끝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번 굳어진 것은 좋은 것이든지 안 좋은 것이든 꼭 해야 마음이 진정이 되나 봅니다.

만세 삼창이 어디에서 유래가 되었을까?

이 행위가 어디에서 유래 되었을까?
새벽 기도회가 우리나라에서 시작한 것같이 좋은 것도 있지만, 만세 삼창의 변형인 주여 삼창이 일제시대부터 시작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의 경축 환호성 ‘반자이(バンザイ, 만세)’를 제작한 인물이 바로 도야마 마사카즈 입니다.
일본에서 ‘반자이’를 처음 외친 것은 메이지 22년(1889) 대일본제국헌법 발포식에서 였는데, 이는 서구의 ‘Long live the King’을 모방한 것 입니다.
한자 ‘萬歲’의 일본식 발음은 고온으로 ‘ばんぜい(반제이)’, 센온으로는 ‘まんざい(만자이)’였는데, 둘 다 어감이 좋지 않다고 보고 센온과 고온을 배합해 반자이로 만들었습니다.
일본 군대들이 조선을 지배하면서, 천황 만세 삼창을 시작하면서 유래된  것이 가장 유력한 증거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도 "주여"삼창을 합니다.

교회에서 기도 시간이나 부흥회 기간 중에 기도를 인도하는 강사들이 "주여!" 삼창을 외치며 기도를 해야 하는 하나의 습관이 정통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저는 한번만 강하게 "주여!" 하면서 기도를 유도합니다. 그런데 다른 분들은 '주여 삼창'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하고 부르짖습니다. "왜 꼭 세 번을 부르짖어야 된다고 생각하느냐?"라고 질문하니 "그래야 은혜 받는다고 느껴진다"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적인 근거는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부흥회 하는 곳에 가서 따라 해보고, 그 뒤에 교회에서 해보니 무언가 힘이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곳에 "주여!" 삼창 문제가 거론되게 해서 성경에 그 자료를 찾아보고 저의 소견을 밝힙니다. 참고 자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1. 심창의 가장 유력한 증거

"주여!" 삼창은 일본의 경축 환호성 ‘반자이(バンザイ) 만세삼창은 기본 입니다. '반자이 반자이 반자이!(만세 만세 만세)' 천황 찬양 같은 식입니다. 반자이, 반자이, 반자이, "만세 삼창"이 일본 대동아 제국 시절 유산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지요? "덴노헤이까 반자이(천황폐하 만세)"라고 부르던 습관! 이것을 새벽 기도할 때에 부흥사들이 이용하여 "주여!" 삼창이 이어져 왔다는 가능성을 기록 된 곳이 있으니, 세상문화가 교회로 유입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천주교에서 미사 후에 "엄마" 삼창을 하는 것을 인터넷에서 보았습니다.

2. "주여!" 삼창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 같은 말을 되풀이함으로 강조(强調)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사 6:3)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렘 7: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겔 21:17) “내가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려니와 이것도 다시 있지 못하리라 마땅히 얻을 자가 이르면 그에게 주리라”

(단 9:19)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바 됨이니이다”

(롬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 크게 부르짖음으로 강청(强請)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행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마 9:27)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가실쌔 두 소경이 따라 오며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크게 소리 지를 때에 결단(決斷)하는 마음을 심어주고, 다른 생각이 틈타지 못하게 하는 최면(催眠) 효과가 있습니다.

3. "주여!" 삼창이 비성경적이라는 입장에서

① 성경에서 가리키는 '주'(主, lord)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개역한글 성경에 '주여'라는 호칭이 구약에 100회, 신약에 107회로 207회 나옵니다.
그것을 분류하면 크게 다음과 같습니다.

ⓐ 하나님(삿13:8)을 가리킵니다. '여호와'(창18:32; 출15:17) 대신 사용한 경칭입니다.
기원전 6세기에는 유대인들이 회당에서 성경을 읽고 시편을 노래할 때,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감히 부르지 못하여, '아도나이'(나의 주님)라는 명칭으로 대신하였습니다.
기원전 2세기에는 아도나이를 '퀴리오스'(Kyrios)로, 라틴어로는 '도미누스'로 번역되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마16:16; 막8:29; 눅13:26; 요11:27; 행22:8)를 가리킵니다.
신약에서는 하나님(여호와)을 가리키던 '주'(퀴리오스)를 예수님과 관련시켰습니다.
주인, 소유자, 상급자를 가리킵니다.(창23:15,44:7;삿4:18)

② "주여!" 삼창에서 가리키는 '주'(主, lord)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기도의 대상이 '성부 하나님' 이시기에 '하나님'을 가리켜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주'라 칭호하면 대부분 '하나님'을 가리키나, 신약시대에는 대부분 '예수님'으로 제한하여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기도의 대상이 '아버지 하나님'이 아니라 '예수님'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아버지여!"라고 호칭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명하셨습니다.(마 6;9; 눅 11:2)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아버지여!' 라고 호칭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마 26:39; 막 14:36; 눅 10:21; 요 12:27)
삼위일체이신데 어떠하냐? 하는데 우리의 예배가 아버지께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여!" 삼창은 기도의 대상을 잘못 정한 부르짖음입니다.

“헛된 부르짖음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전능자가 돌아보지 아니하심이라”(욥 35:13)

③ 하나님께 유기(遺棄. 내다 버림)된 자에게 반복된 "주여, 주여"를 사용하였습니다.
"주여"라고 하는 자들은 종들입니다.
성경에 "주여"라는 호칭이 반복 된 곳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 사용의 경우를 살펴보면 '주님'으로부터 유기된 경우였습니다.
다음 말씀과 맥이 통하는 것 같습니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마 6:7)

한번 '주여'가 들어간 성경구절에는 내 주인의 종으로 표현된 곳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주여, 주여"를 강조한 구절은 버림받은 자들이 부르짖는 절규의 소리입니다.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 25: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눅 6: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눅 8:24)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④ 제가 기도원 집회에 갔는데 그날따라 찬송 인도하는 분이 찬송을 반복을 하지 못하고 한곡하고 쉬고 '주여' 삼창을 하는 근거를 설명하면서 다니엘 9장19절을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기도원 집회는 찬양을 강하게 하여서 강사에게 바톤을 넘겨주어야 하는데 찬양 인도자가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여" 삼창의 성경 근거가 잘못 해석되었습니다. "주여!" 삼창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내 세운 성경말씀,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바 됨이니이다"(단 9:19)

이 말씀은 "주여!" 삼창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 말씀은 "주여"의 반복이 아니라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의 세 가지 기도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부르짖는 것이 잘못 된 것이 아닙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렘 33:3)고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주여!" 삼창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정리 할 수 있습니다.

1. 예배와 기도의 대상이 '아버지 하나님'이어야 하는데 '예수님'으로 잘못 정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 무엇을 구한 것은 예수님 이름을 내세워서 받으라는 것입니다.

2. 호칭의 반복 사용함은 주로 표기된 구절이 하나님께 유기된 자에게 사용되었습니다.

3. 주여 삼창의 성경적 근거로 내세운 말씀이 잘못 해석되었습니다.

4. 중언부언하는 기도가 되고 있습니다(참고: 마 6:7)

5. 천주교에서 미사 후에 "엄마" 삼창을 흉내 낸 것과 같습니다.

세계의 교회 중에 '주여' 삼창하는 교회는 한국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초대교회나 유럽교회에서 '주여 삼창'의 근거가 복음과 함께 온 흔적이 없습니다.
만약 그것이 있다면 따라하는 것도 무방하지만, 교회에 일제 잔재를 없애야 합니다.
좋은 것이라면 권장을 하여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많은 성도들과 선배 목사님들을 순교하게 한 일본천황을 섬기던 신사참배가 생각나서 권장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저는 언제부터 '주여 삼창"을 하자고 하면 마음이 답답합니다.
한 번만 할 때는 힘이 나는데 왜 그런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도자가 세 번을 외치라고 하든지 말든지 저는 언제나 한 번만 외칩니다.
세 번을 하든지 한번을 하든지 성경적 근거가 없고 습관적으로 하는 것이라면 고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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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옹호법안 발의한 국회의원 명단 / ‘교회폐쇄법’은 존재하는가?



동성애 옹호법안 발의한 국회의원 명단

19

동성애 옹호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 명단이 공개됐다.

 

군동성애합법화반대국민연합·성매매합법화반대국민연합(공동대표 이용희)이 지난 21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군동성애 및 성매매 합법화 반대 기자회견'을 여는 등 군동성애 반대 등 동성애 허용 '차별금지법' 반대 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전국 학부모는 동성애, 절대 찬성할 수 없다'는 내용의 성명 발표와 함께 제19대 국회에서 '동성애 옹호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 명단을 공개했다.

이들 단체는 성명에서 "전국 학부모는 내 아들 딸이 '동성애자'가 되는 것을 결단코 원하지 않는다"며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서울시청광장에서 벌거벗은 차림의 동성애자들이 축제를 열고 서울시 박원순 시장은 세금으로 경비를 보조하는 등 인간의 본성을 잃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동성애는 축제를 하며 권리를 요구할 사안이 아니"라며 "소수자 권익보호라는 미명아래 표를 모으겠다는 정치권이 동성애자들과 유착해 사회건강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등 시민단체들이 발표한 동성애 옹호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 명단
1순위, 왼쪽부터 유성엽(전북 정읍), 은수미(비례대표), 장하나(비례대표), 전정희(전북 익산시(을)), 김광진(비례대표) 국회의원(사진 속 국회의원 전원 더불어민주당 소속,출처:사진 속 국회의원 SNS).

19대 국회에서 동성애 옹호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 명단 공개와 관련해선, ▲군형법개정안 - 권성동 의원등 13인 (의안번호 3678, 발의일자 2013.2.12) ▲군형법 - 김광진 의원등 10인 (의안번호 3269, 발의일자 2013.1.9) ▲군형법 - 남인순 의원등 17인 (의안번호 3390, 발의일자 2013.1.23) ▲군형법 - 진선미 의원등 10인 (의안번호 9746, 발의일자 2014.3.17) ▲차별금지법 - 김재연 의원등 10인 (의안번호 2463, 발의일자 2012.11.6) ▲차별금지법 - 김한길 의원등 51인 (의안번호 3693, 발의일자 2013.2.12) ▲차별금지법 - 최원식 의원등 12인 (의안번호 3793, 발의일자 2013.2.20) 등을 동성애 옹호 법안으로 간주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군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은 군대 내에서의 동성간 성행위에 대한 처벌규정을 삭제하는 내용으로 명백히 동성애 옹호를 위한 개정안이라고 할 수 있다. '차별금지법안'도 성적지향(동성애) 차별금지조항을 포함시킴으로써 동성애를 옹호, 조장하는 결과를 낳는다. 언급한 동성애 옹호 법안 7개중 두 개 이상을 발의한 의원 명단만 발표하며, 명단을 선정시 정당과 지역은 고려하지 않고 법안 발의 숫자를 기준하였음을 밝힌다"고 설명했다.

명단이 공개에서 1순위로 지목된 김광진 비례대표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전남 순천·곡성에, 진선미 비례대표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서울 강동갑에, 장하나 비례대표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서울 노원갑에 출마 예정이다.

이와 관련 박철성 소장(다우경제연구소, 칼럼니스트)은 한 언론 매체에 기고한 '남자 며느리, 여자 사위! ..이게 말이 되니'라는 제하의 칼럼을 통해, 동성애 관련 법안을 제출한 국회의원들을 강력 비판했다.

특히, 박 소장은 김광진·진선미·장하나 비례대표 의원의 '동성애 옹호 행적'이라며 관련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공개했다.

김광진 의원의 동성애 옹호 행적, 박철성 소장(다우경제연구소) 칼럼 캡처.

진선미 의원의 동성애 옹호 행적, 박철성 소장(다우경제연구소) 칼럼 캡처.

장하나 의원의 동성애 옹호 행적, 박철성 소장(다우경제연구소) 칼럼 캡처.

칼럼에서 박 소장은 "김광진 의원은 인터넷 방송 매체 KHTV와 인터뷰에서 '동성애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특별히 반대할 하등의 근거가 없으므로 동성 간의 결혼에 동의한다.
며느리가 남자인 것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또, 진선미 의원에 대해선 "1997년 당시 변호사였던 진선미 의원은 동성애자인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과 함께 '동성애자 인권연대'를 창립했다"이라며 "진 의원은 교과서에서 동성애의 문제점과 실태를 알렸던 내용을 전부 수정, 삭제하고 동성애 옹호운동을 만든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장하나 의원은 <군형법> 제92조의6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며 "장 의원은 '결혼은 두 사람의 결합인데 꼭 자녀를 출산한다는 것이 중요한 요소로 있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동성 간의 결혼은 당연히 합법화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끝으로 박 소장은 "제19대 비례대표 중에서 정의당과 녹색당, 노동당에는 '동성애자 위원회'가 있을 정도다.
이들 정당도 동성애를 옹호, 주장하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의원 거의 대다수는 동성애 편을 들고 있다.
이들이 4.13총선에 대거 출마를 선언했다.

‘교회폐쇄법’은 존재하는가?

과잉 해석? 서울시청 담당 주무관도 “교회 폐쇄 가능”
‘교회’라는 말 없다는 이유로 괜찮다는 건 설명 안 돼.
실제로 교회 유독 탄압해 왔으니, 우려 제기할 수밖에.
죄형법정주의· 평등원칙· 과잉금지원칙 등 위배돼 위헌

▲박성제 변호사. ⓒ크투 DB

최근 교계에서 소위 ‘교회폐쇄법’이 논란이 되고 있다.
몇몇 교계 인사들이 개정된 감염병예방법의 일부 내용을 문제 삼아 ‘교회폐쇄법’이라고 비판하자, 평화나무(이사장 김용민)가 이를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본지는 기독 법률가로서 교회 수호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박성제 변호사(법무법인 추양 가을햇살)를 만나 교회폐쇄법 논란에 대해 팩트체크했다. 다음은 박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교회폐쇄법’은 존재하는가?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약칭 ‘감염병예방법’이 이미 국회에서 통과돼 12월 30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 중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다음 49조이다.

제49조(감염병의 예방 조치)
① 질병관리청장,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은 감염병을 예방하기 위하여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모든 조치를 하거나 그에 필요한 일부 조치를 하여야 하며, 보건복지부장관은 감염병을 예방하기 위하여 제2호, 제2호의2부터 제2호의4까지 및 제12호의2에 해당하는 조치를 할 수 있다.

2. 흥행, 집회, 제례 또는 그 밖의 여러 사람의 집합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것
2의2. 감염병 전파의 위험성이 있는 장소 또는 시설의 관리자·운영자 및 이용자 등에 대하여 출입자 명단 작성, 마스크 착용 등 방역지침의 준수를 명하는 것

③ 특별자치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은 제1항제2호의2의 조치를 따르지 아니한 관리자·운영자에게 해당 장소나 시설의 폐쇄를 명하거나 3개월 이내의 기간을 정하여 운영의 중단을 명할 수 있다. 다만, 운영중단 명령을 받은 자가 그 운영중단기간 중에 운영을 계속한 경우에는 해당 장소나 시설의 폐쇄를 명하여야 한다. <신설 2020. 9. 29.>

④ 특별자치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은 제3항에 따른 폐쇄 명령에도 불구하고 관리자·운영자가 그 운영을 계속하는 경우에는 관계 공무원에게 해당 장소나 시설을 폐쇄하기 위한 다음 각 호의 조치를 하게 할 수 있다. <신설 2020. 9. 29.>
1. 해당 장소나 시설의 간판이나 그 밖의 표지판의 제거
2. 해당 장소나 시설이 제3항에 따라 폐쇄된 장소나 시설임을 알리는 게시물 등의 부착.

목사님들이 이 내용에서 ‘해당 장소나 시설’을 ‘교회’로 대체해서 읽어 이해하면, ‘교회 폐쇄’라고 해석이 가능하게 된다.
스님 입장에서는 사찰폐쇄법, 신부님 입장에서는 성당폐쇄법이라 할 수도 있는 부분이고, 일반 상업시설들도 마찬가지다. 저도 혹시 제가 과잉 해석을 하는가 싶어 서울시청 담당 주무관과 통화했는데, 그 역시 (해당 법을 위반하면) 당연히 교회도 폐쇄될 수 있다고 답변하더라.

지금 법에 따라서 시행되면 가장 크게 부딪힐 문제가 바로 현장 예배가 될 것이다.
현장 예배를 드렸을 때 출입자 명부 작성을 잘못한다든지 마스크 착용을 하지 않으면, 또 설교자가 마스크 쓰지 않아도 방역지침 위반이 돼 교회가 폐쇄되고 교회 간판과 십자가가 철거될 수도 있다.
이 법이 만들어질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만들어져서 12월 30일 시행만 앞두고 있다.”

- 그러면 기존에 있던던 교회 폐쇄 사건들의 경우, 법적인 근거가 없었던 것인가?

“기존의 감염병예방법에도 근거는 있다.
그러나 명확하게 확진자가 발생한 경우에만 가능했고, 민원 제기만으로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확진자 없이 교회를 폐쇄했다면 그것은 법을 굉장히 잘못 적용한 것이고, 나중에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해서라도 다 배상을 받아야 할 부분이다.
그런데 이제는 아예 신설된 규정들에 따라 언제든지 지방자치단체장이 교회를 폐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다 열려 있는 상황이다.”

-평화나무의 반박 취지는
‘첫째로 해당 법안은 교회나 예배를 특정한 법안이 아니고,
둘째로 방역을 방해할 정도의 허위사실 유포를 처벌하는 것은 교회 탄압이라 보기 어렵고,
셋째로 방역지침만 잘 따르면 교회라서 불이익당할 일은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단지 교회라는 말이 없어서 괜찮다는 것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원래 법을 만들 때 특별법을 제외하고는 특정 단체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기존에도 ‘시설’ 혹은 ‘장소’에 대한 법률을 근거로 교회까지 제재했었다.
교회만 탄압하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시설을 폐쇄·중단시킬 수 있고 이용자나 관리자, 그리고 소유자까지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을 지금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러나 왜 유독 교회에 대해서 탄압한다고 말하느냐면, 실제로 탄압을 당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유독 교회에 대해서만 예배를 금지시켰으니, 이 법이 적용되면 결국 또 교회가 표적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우려를 제기한 것이다.
서울시의 최근 방역지침을 봐도 공용으로 된 성경책이나 찬송가 쓰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굳이 특정 종교로 이해할 수밖에 없게끔 하는 단어들을 채택한 것이 너무 의도적으로 보이지 않느냐.
그런 것만 봐도 교회를 집중해서 보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조항을 빌미로 평화나무가 지난 총선 때처럼 목사님들의 설교를 모니터링해서 고발할 수도 있다.”

지금 교회만큼 방역지침을 잘 지키는 곳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바로 예배부터 중단하는 것은 정부 시책을,. 예배 자체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한다.
내가 원하는 대로 예배도 못 드리고 복음을 전할 수도 없고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표현하기만 해도 사람들한테 혐오의 대상이 된다면 북한과 뭐가 다른가.
이런 부분들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을 해줘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 위헌 소지는 없는가?

“형벌적 기능이 들어가려면 죄형법정주의가 적용돼야 하는데, 그 중 제일 중요한 것이 예측 가능성, 즉 구성요건이 명확해야 한다.
그런데 감염병예방법상의 집합제한, 집합금지 등이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다 보니 내가 언제 어떻게 이 구성요건을 어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이 부분이 위헌적 요소가 제일 크다고 보고 있다.

또 하나는 평등원칙 위반이다. 코로나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이렇게 통제하는 방식, 그리고 각 대상들마다 적용을 너무나도 자의적으로 하는 것이 평등원칙에 반한다고 생각한다.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으면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끔 하는 법안들이 많이 나와 있는데, 이 정도 처벌은 고위험 병원체 불법 반입 등과 거의 동급이다. 과연 이게 평등원칙과 과잉금지원칙에 합당한가 따져 봐야 한다.”


교회 폐지법을 발의한 21대
민주당 국회 의원 78명과
무소속 1명, 79명 의원 명단.
 
절대 잊지 말아야 하는 악한 이름들
 
현재 한국에 있는 교회를 폐지하자는
발의를 하자, 그에 대한 항의가 많아지자
발의자가 스스로 철회했다.
교회를 폐지하자는 사람이
국회의원의 자질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한심하다.
다음에 명단을 기억했다가
표를 안 주었으면 한다.
 
기억했다가
다음 선거에 꼭 탈락시키자!
 
1. 김성주   02-784-5031
2. 이상헌   02-784-8630
3. 홍성국  02-784-2820
4. 조승래  02-784-2648
5. 강선우  02-6788-6031
6. 이용빈  02-784-4291
7. 신영대  02-784-1524
8. 서동용 .............
9. 임호선  02-784-1730
10. 최종윤 02-784-6201
11. 윤준병 02-784-1860
12. 이탄희 02-784-8940
13. 허종식 02-784-8870
14. 정춘숙 02-784-3740
15.  이학영 02-784-8051
16. 송재호  ............
17. 이형석 02-784-1307
18. 오영관 02-788-6766
19. 전용기 02-784-2843
20. 김민철 02-784-5031
21. 이재정 02-784-2677
22. 고영인 02-784-5490
23. 서영석 02-784-9671
24. 홍정민 ...........
25. 이해식 02-784-2171
26. 이규민 02-784-3770
27. 박영순 02-784-2066
28. 윤후덕 02-788-2587
29. 전용기 02-784-2843
30. 한준호 02-784-9160
31. 김남국 02-784-2455
32. 이원욱 02-784-6471
33. 임오경 02-784-6396
34. 정청래 ..............
35. 최종윤 02-784-6201
36. 박용진 02-784-9721
37. 고영인 02-784-5490
38. 신용대 02-784-1524
39. 김윤덕 ..................
40. 강준현 02-784-6950
41. 민형배 02-6788-6426
42. 한병도 02-784-5891
43. 이장섭 02-784-4441
44. 서삼석 02-784-9501
45. 김성주 02-784-7380
46. 설   훈 02-784-8570
47. 오영환 02-788-6766
48. 김민철 02-784-5031
49. 김종민 02-784-5920
50. 이수진 ................
51. 이성만 02-784-6090
52. 윤재갑 02-784-1460
53. 박홍근 02-784-8370

공산주의자는 세계를 공산화시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런데 공산주의자들이 세계를
공산화시키는데 제일 큰 걸림돌이 교회이다.
그래서 좌경이념을 가진 공산주의자들은
교회를 폐쇄시키려고 한다.
 
 
<긴급알림>
 
●  43인의 민족 반역자
🔴  주한미군 철수에 서명한 우리 민족의 반역자 43인 전격 공개  
     이놈들이 주한미군 철수에 서명을 하였다고 합니다.
 
금번 주한미군 철수 요구에 서명한 43인 국회의원 명단을 입수해 공개
 ● 서명한 국회의원 명단
 
# 민주당~~~
강병원, 강훈식, 기동민, 김민기, 김병욱, 김상희, 김영호, 김철민, 김한정, 노웅래, 민병두, 박경미,
박    정, 박재호, 박홍근, 서삼석, 서영교, 소병훈, 송옥주, 송영길, 신창현, 심기준, 안호영, 어기구, 우원식, 위성곤, 유동수, 유승희, 윤일규, 윤준호, 이개호, 이석현, 이후삼, 임종성, 전재수, 정재호, 제윤경, 조승래
 
# 정의당~~~
김종대, 추혜선
 
# 평화당~~~
정동영
 
# 대안신당~~~
박지원, 천정배
 
모두 47명이라는데,
3명은 숨어있는 프락치들
 
1949년 한국전쟁 직전에 국회부의장 김약수라는 자와 남로당 프락치들은  주한미군 철수를 건의하는 결의안을 상정하였으며,
미군은 고문관 500명 미만을 남기고 모두 철수하였다.
이어서 1950년 1월 20일 애치슨 미국무 장관은 한반도는 미방위선 밖이라고 내외에 선포하였다.
 
이미 스탈린의 내락을 받은 김일성은 탱크와 중포를 은밀하게 38선 일대에 포진시키면서 6.25 새벽 4시를 기하여 일제히 남침하였다.
그 전에도 남한 정부는 낌새를 알아 차리고 미국에 공격용 무기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하였지만, 미국은 남에서 북침 가능성이 있다고 거부하였다.
 
실상 신성모 국방부 장관채병덕 육군 참모총장은 국회답변에서 만약 전쟁이 발발하면,
“아침은 해주에서 떼우고, 점심은 평양에서 해결하고, 저녁은 신의주에서 질탕하게 먹는다.” 고 호기롭게 큰소리를 쳤다.
 
막상 6.25 전날은 전 장병의 1/3이 농번기 휴가를 보냈으며,
2주일 전에는 전후방 사단장의 인사이동에 이어 육군장교회관 낙성식이라는 미명 아래, 밤새도록 댄스파티와 여흥을 즐겼다.
 
전쟁이 터지자 하루 만에 옹진반도와 개성, 의정부까지 실함되고, 이에 망연자실한 이승만 대통령은 27일 새벽 3시 기차를 타고 대구까지 내려갔다가 대전으로 돌아 왔다. 
28일 당시의 유일한 한강 인도교와 철교를 폭파해 가면서 육군본부는 수원으로 이동하기로 하였다가, 맥아더 장군의 지원이 있다고 하자 허겁지겁 시흥으로 되돌아 왔다.
 
이 대통령은 수원 비행장에 도착하는 맥아더 원수를 마치 구세주 마중하듯이 대전에서 올라와 극진히 영접하였으며,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아예 맥아더에게 양도한다고 선언하였다.
비참하지만 그것이 그당시 우리의 생생한 역사였다.
 
실상 국군은 완전히 와해되었으며, 총기와 실탄은 물론 모든 보급품과 식량, 군복 등도 모두 미군이 주는 걸 감지덕지 받아서 지탱하였다.
 
정부예산은 모두 군사원조와 더불어 민간원조의 달러를 공매해 대충자금이란 항목이 절대비중을 차지하면서 원조물자로 국민을 기아상태로부터 살려낸 상황이다.
 
지금까지 이러한 우여곡절을 거쳐 이제 좀 먹고 살만 하니까...  ‘갈테면 가라!  양키 고 홈!’을 외쳐만 대는 주사파 종북 빨갱이들을 바라보는 미국인들의 심정은 과연 어떠할까?
 
아무리 트럼프가 무리한 요구를 할지라도 인간이라면, 사람의 도리를 알아야만 한다.
 
마치 부모가 소팔고, 논팔아 자식을 공부시켜 놓은 후, 출세한 자식놈이 시골에서 가난하게 사는 부모 형제에게 쥐꼬리만한 용돈을 쥐어주면서 생색만 내어 가는 호로자식과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미군정이 1945년 한반도에 진출하면서 그들은 편의상,
 
전라도를 하와이,
경상도를 플로리다,
평안도를 텍사스,
함경도를 알래스카 라고 호칭하였다.
 
그 중 하와이에 대하여만 별칭으로 남았으며, 호남인들은 하와이 라고 언급하면,
그들은 그만 경기를 일으킨다.
하와이든 알래스카든 그 곳이 좋다면, 거기가서 살면 될 일이다.

제21대 국회, 신자 의원 78명 당선

제21대 국회를 구성할 국회의원 당선자 300명 가운데 천주교 신자는 모두 78명(4월 21일 현재)으로 확인됐다.

본지가 4·15 국회의원 선거 지역구 253명과 비례대표 47명의 당선자를 확인한 결과다. 직전 2016년 국회의원 선거 당선자 중 본지가 확인한 천주교 신자가 77명이었던 것에 비해 1명이 증가한 수치다.

정당별로 보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52명으로 가장 많은 신자 당선자를 냈고, 야당인 미래통합당은 14명의 신자 당선자를 냈다. 이 밖에 미래한국당 4명, 더불어시민당 4명, 정의당 3명, 국민의당 1명이 각각 신자 당선자다. 신자 당선자 78명 가운데 남성은 62명, 여성은 16명이었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 신자 당선자 78명은 전체 300명 중 26%에 해당하는 비율이어서 총인구 대비 한국교회 신자 비율(2018년 11.1%)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4·15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지역구에서 163석, 더불어민주당이 비례대표 선거를 위해 만든 더불어시민당이 17석을 얻어 지역구에서 84석을 얻은 미래통합당과 비례대표 19석을 얻은 미래한국당을 압도했다.

한국교회가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형제 폐지나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 보호와 빈부 격차 해소 등에 더불어민주당이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연대해 온 점을 감안하면 이번 선거 결과와 신자 당선자 현황은 한국교회에 희망적이라 볼 수도 있다.

당선자 중 초선 신자들은 각오가 남달랐다. 조오섭(요셉·52·광주 문흥동본당) 더불어민주당 광주 북구갑 당선자는 “이제 싸우는 국회를 멈추고, 일하는 국회를 만들어 정의로운 나라, 공정한 사회, 평화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힘쓰겠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김승원(바오로·50·수원 정자동주교좌본당) 더불어민주당 경기 수원시갑 당선자는 “성경 말씀과 사회교리에 따라서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 실현되는 데에 일조하고 약자를 먼저 생각하는 의정활동을 펴고 싶다”고 향후 정치 활동에 대한 소신을 드러냈다. 김은혜(로사리아·49·수원교구 성남 서판교본당) 미래통합당 경기 성남 분당구갑 당선자는 “품격 있는 보수, 대안을 제시하는 보수, 미래를 맡길 수 있는 보수의 모습을 보여 달라는 국민의 염원을 읽었다”고 겸손한 모습을 강조했다.

중진 신자 당선자도 무거운 책임감을 보였다. 서울 용산구에 출마해 4선 의원이 된 미래통합당 권영세(스테파노·61·서울 이태원본당) 당선자는 “선택해 주신 용산구민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 용산의 발전과 대한민국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소사댁’으로 불리며 역시 4선에 성공한 김상희(크레센시아·65·인천교구 부천 소사본3동본당) 더불어민주당 경기 부천시병 당선자도 “‘잘 해서’ 뽑아 주신 것이 아니라, ‘더 잘하라’는 채찍으로 생각하고 이번 선거 결과에 자만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 교회폐지법을 발의한
21대 민주당 국회 의원 78명과 무소속 1명, 79명 의원 명단.
 
●절대잊지 말아야 하는 악한 이름들●
 
현재 한국에 있는 교회를 폐지하자는 발의를 하자, 그에 대한 항의가 많아지자 발의자가 스스로 철회했다. 교회를 폐지하자는 사람이 국회의원의 자질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한심하다. 다음에 명단을 기억했다가
표를 안 주었으면 한다.
 
교회여~~~
●기억했다가 다음 선거에
꼭 탈락시키자!! ●
 
김성주   
02-784-5031
이상헌
02-784-8630
홍성국
02-784-2820
조승래,
02-784-2648
강선우
02-6788-6031
이용빈
02-784-4291
신영대
02-784-1524
서동용    
.............
임호선
02-784-1730
최종윤
02-784-6201
윤준병
02-784-1860
이탄희
02-784-8940
허종식
02-784-8870
정춘숙
02-784-3740
이학영
02-784-8051
송재호   
............
이형석
02-784-1307
오영관
02-788-6766
전용기
02-784-2843
김민철
02-784-5031
이재정
02-784-2677
고영인
02-784-5490
서영석
02-784-9671
홍정민  
...........
이해식
02-784-2171
이규민
02-784-3770
박영순
02-784-2066
윤후덕
02-788-2587
전용기
02-784-2843
한준호
02-784-9160
김남국
02-784-2455
이원욱
02-784-6471
임오경
02-784-6396
정청래  
..............
최종윤
02-784-6201
박용진
02-784-9721
고영인
02-784-5490
신용대
02-784-1524
김윤덕  
..................
강준현
02-784-6950
민형배
02-6788-6426
한병도
02-784-5891
이장섭
02-784-4441
서삼석
02-784-9501
김성주
02-784-7380
설   훈
02-784-8570
오영환
02-788-6766
김민철
02-784-5031
김종민
02-784-5920
이수진  
................
이성만
02-784-6090
윤재갑
02-784-1460
박홍근
02-784-8370
공산주의자는 세계를 공산화시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런데 공산주의자들이 세계를
공산화시키는데 제일 큰 걸림돌이 교회이다.
그래서 좌경이념을 가진 공산주의자들은 교회를 폐쇄시키려고 한다.